고환암, 스포츠 선수들이 유독 많이 걸려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사이클 황제로 불렸던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이 대표적이고 영국 프리미어리그 공격수 호나스 구티에레스, 미국 메이저리그 한국계 외야수 코너 조 등의 투병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대부분 10~20대 때 발병한 고환암을 이겨내고 복귀해 ‘인간 승리’로 팬들에게 회자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구에서 직업 혹은 일상생활에서의 신체활동과 고환암 발생과의 연관성은 밝혀진 바 없다.
다만 고환암이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에 많이 생기고 적극 치료받으면 완치율이 90% 이상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고환암, 15~34세 발병률 4위
고환암은 정자와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을 만드는 생식기관에 생기는 암이다.
중앙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에 325명의 고환암이 새로 발생했다.
매년 200~300명대에서 조금씩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는 추세다.
남성 인구 10만명당 1.3명꼴로 발생해 희귀암(10만명 당 6명 미만 발생)에 해당된다.
전체 남성암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2%에 불과하지만 2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 연령대에선 각별히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15~34세 발병률은 갑상샘암,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에 이어 4위로 높은 편이다.
이는 고환암의 기원적 특징 때문으로 추정된다.
국립암센터 희귀암센터 최원영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28일 “고환암의 95% 이상이 생식세포(정소세포) 기원이다.
생식세포는 사춘기 이후 남성 호르몬과 정자 생성을 위해 활발하게 분화되기 때문에 암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발생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환암 원인
고환암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잠복고환’인 경우 정상 인구 집단에 비해 발생률이 높다고 보고돼 있다.
태아 시기에 고환은 뱃속(복강 내)에 위치하다가 점차 아래로 내려와 출생 시에는 음낭에 위치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고환이 음낭까지 하강하지 않고 복강에서 음낭 윗부분에 머무르는 것이 잠복고환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비뇨의학과 안순태 교수는 “잠복고환인 경우 고환암 위험을 거의 5배 증가시킨다는 역학 연구들이 나와있다”고 말했다.
잠복고환은 보통 신생아 시기에 발견해 수술로 제 위치에 고정시키는 데, 이런 경험이 있다면 향후 고환암 고위험군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고환암 증상
고환암의 전형적인 증상은 초기에 고환에서 통증 없이 만져지는 단단한 결절(덩어리)이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경우 고환암을 의심하고 정확한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고환은 원래 한쪽이 조금 더 크지만 암이 생기면 양쪽 크기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
고환 부위에 묵직하고 당겨지는 느낌의 통증이 있거나 가슴이 커지는 ‘여성형 유방증’을 겪는 경우도 있다.
아랫배에 종괴(덩어리)가 우연히 만져져 고환암이 진단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 땐 고환에서 시작된 암이 주변 복강 림프절로 퍼져 꽤 진행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1년 6개월 전 고환암을 진단받은 신모(37)씨가 그런 사례다.
신씨는 진단 몇 개월 전부터 오른쪽 고환에 딱딱한 뭔가가 만져지고 복부와 가슴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고 했다.
그는 “배 위에서 놀던 아이가 ‘아빠 배꼽 옆에 덩어리가 있다’고 해 깜짝 놀랐고 그 즈음 젖꼭지에 멍울이 생겼다.
그게 고환암 때문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검사결과 고환의 암은 이미 그의 폐와 간까지 퍼졌고 3기로 판정됐다.
고환암은 대개 한쪽에 생기지만 드물게 양쪽에 동시 발생하기도 한다.
이 경우 각자 암이 생기는 것이지 한쪽에 생겨 반대쪽으로 전이되는 것은 아니다.
고환에 덩어리가 발견되면 초음파 검사를 가장 먼저 시행해 다른 고환 질환과 감별하는 게 중요하다.
암 외에 고환의 부종이나 통증이 수반되는 질환에는 부고환염, 음낭수종(음낭에 물이 참), 고환정맥류(고환내 정맥이 부풀어 오름), 서혜부 탈장(장이 사타구니로 튀어나옴) 등이 있다.
고환 초음파에서 암 가능성이 높은 경우 혈액검사로 3종류의 종양 표지자(베타-HCG, LDH, AFP)수치를 측정하고 CT촬영을 통해 림프절 및 원격 전이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70%는 암이 고환에 국한된 상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수술(근치적 고환 절제술) 후 전반적인 치료 성적은 좋은 편이다.
설사 암이 림프절이나 다른 장기로 퍼졌더라도 항암치료의 반응률이 높아 완치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1~4기로 구분되는 다른 고형암(덩어리암)과 달리 고환암은 1~3기까지만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본 항암치료로 완전관해(암이 사라짐)에 도달하지 않거나 재발한 경우에도 고용량 항암치료 및 조혈모세포이식(골수 이식)을 시행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앞서 폐와 간까지 전이를 경험한 신씨도 이런 치료로 현재는 암세포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신씨는 “다음 달 사회생활에 복귀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했다.
많이 진행된 고환암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고환은 암이 생긴 한쪽을 절제해도 다른 한쪽이 생식에 필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
다만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시 다른 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미혼 남성이라면 결혼 후 임산·출산을 대비해 치료 전 정자 냉동보관을 꼭 고려해야 한다.
임신 테스트기로 찾는다?
고환암 조기 발견을 위해 소변을 보거나 샤워할 때 고환까지 살피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이 때 고환의 경도(딱딱한 정도), 모양, 부피 3가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안순태 교수는 “특히 암 가족력이 있거나 잠복고환 병력이 있는 경우 사춘기 이후 매월 한번씩 자가 검진이 권고된다”면서
“검진할 때는 양쪽 고환을 검지와 다른 손가락들 사이에서 굴리면서 단단하게 만져지는게 있는 지 확인하고 양쪽 고환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임신 테스트기로 고환암을 찾아낼 수 있을까.
실제 몇년전 미국에서 한 남학생이 호기심에 자기 소변으로 임신 테스트를 했다가 두 줄이 나오자 인터넷에 ‘나 임신했다’고 글을 올렸고,
‘고환암일 수 있다’는 댓글을 보고 병원을 찾아 고환암을 진단받은 사례가 언론에 소개돼 화제가 된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환암 중 일부는 잡아낼 수 있다.
임신 테스트기는 임신 시 체내에 올라가는 ‘베타-HCG(융모성선자극호르몬)’라는 물질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것을 간이 테스트기로 검출하는 원리다.
베타-HCG는 고환암의 종양 표지자 중 하나이고 일부 고환암 환자에서는 베타-HCG 수치가 높게 나오기도 하지만 정상 범위에 있는 경우도 꽤 있다.
최 전문의는 “베타-HCG 수치가 높은 특정 유형의 고환암 환자의 경우 임신 테스트기에서 양성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임신 테스트기가 음성이라고 해서 고환암을 배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또 혈액에서의 베타-HCG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소변에서의 수치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했다.
다른 종양 표지자인 AFP와 LDH 수치도 같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 전문의는 “일부 사례 일뿐 자가 진단 목적으로 권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